제8장

강설아는 윤명주의 말투가 퉁명스러운 것을 눈치채고 즉시 말했다. “내가 괜한 생각을 했네. 그 천한 것이 어떻게 Cynthia겠어? 그리고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 명주가 이 병원에서 최고인데. 신시아가 온들 무슨 상관이야. 명주 너는 예쁘고 집안도 좋은 데다 의술까지 뛰어나잖아. 미래의 이도준 사모님이기도 하고. 누가 감히 네 앞길을 막겠어.”

강설아의 치켜세우는 말에 윤명주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병실 밖.

“할 말 있으면 해.” 박희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그 입 좀 어떻게 해야겠다. 말 좀 곱게 하면 어디 덧나?”

“곱게? 그럼 이 대표님한테 곱게 말한다는 건 뭔데요? 예전처럼 당신한테 저자세로 나가고, 무슨 말이든 고분고분 따르고, 아니면 바보처럼 당신 처분만 기다리는 거? 내가 당신 직원이에요, 노예예요?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

박희수는 연달아 따져 물었다.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전에는 그에게 너무 잘해줬다. 모든 걸 조심스러워하고, 뭐든 순종하며 감히 반박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그녀를 언제든 주무를 수 있는 말랑한 홍시쯤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예전의 박희수인 줄 아는 걸까?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부터는, 어림도 없지!

남자의 깊은 눈동자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는 그녀를 뼛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박희수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마치 남자에게 ‘난 당신 무섭지 않아!’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이를 갈았다. 잇새로 비집고 나오는 목소리가 섬뜩했다. “박희수, 너 잘했다!”

박희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남자가 문을 박차고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박희수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저 남자는 너무 무서웠다. 박희수는 차라리 평생 그와 어떤 교류도 없이 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박희수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떼기 전에 그의 비서인 윤정이 보디가드들과 함께 앞을 가로막았다. “사… 박희수 씨, 대표님께서 가도 좋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박희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길을 억눌렀다. 그리고 고요한 눈빛으로 윤정을 응시했다.

윤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전 사모님, 예전과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그 눈빛이 마치 자기를 산 채로 회 뜨려는 것 같았다.

“윤 비서님.” 박희수가 나지막이 불렀다.

“네!”

“저…!” 박희수는 숨을 한 번 더 깊게 들이마셨다. “화장실 좀!”

“…….” 윤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즉시 뒤에 있는 보디가드들에게 말했다. “박희수 씨 화장실 가시는 길, 호위해 드려.”

“…….” 박희수는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 “호위?”

“네, 호위입니다.” 윤정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이건 그냥 감시잖아!

박희수는 어금니를 갈며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윤정 씨, 대단하시네요!”

박희수는 씩씩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에 힘없이 기댔다. 등 뒤에 꼬리처럼 따라붙은 두 보디가드 때문에 도망칠 기회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두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박희수가 속수무책으로 있을 때였다….

“엄마.” 달콤한 목소리가 박희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박희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유리?”

“엄마!” 유리가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뛰쳐나와 박희수의 품에 와락 안겼다.

박희수는 믿기지 않는 듯 딸을 끌어안았다. 마음속은 기쁨으로 미칠 것 같았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유리야, 비행기 안 탔어? 여긴 어떻게 찾았어?”

“오빠가 데려왔어. 엄마 잊었어? 오빠가 엄마랑 유리랑 길 잃어버릴까 봐 준 우리 시계에 위치 추적 기능 있잖아.” 유리가 손을 들어 손목에 찬 분홍색 시계를 흔들어 보였다.

“위치 추적으로 쓰레기 아빠 집을 찾았어. 원래 오빠가 엄마를 어떻게 구할지 계획하고 있었는데, 위치가 엄마 따라서 병원으로 오길래 우리도 온 거야.”

박희수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예전에 아이가 채워줘서 그냥 계속 차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유리야, 오빠는?”

“오빠는 밖에 있어. 엄마, 걱정 마. 우리가 엄마 구할 방법 생각하고 있어. 맞다, 엄마. 오빠가 엄마한테서 계속 연락이 없는 거 보면 분명히 핸드폰 뺏겼을 거래. 이거 엄마 핸드폰이야. 꼭 잘 숨겨 둬.”

박희수는 감동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이 두 아이는 정말 그녀의 위대한 구세주였다. 핸드폰이 있으면 훨씬 편해질 터였다. 박희수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즉시 숨겼다.

“고마워, 우리 아가. 유리랑 오빠는 정말 엄마의 구세주야. 이제 엄마 혼자 도망칠 방법이 생겼으니까, 너희가 여기 있는 건 너무 위험해. 먼저 이모한테 돌아가 있을래? 엄마가 나중에 합류할게.”

이도준이 바로 이 층에 있었다. 만약 그가 시후를 본다면 끝장이었다. 그는 분명 아이들을 빼앗아갈 것이다. 이씨 집안은 절대로 자신의 핏줄이 밖에서 떠도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시후와 유리는 그녀의 목숨이었다. 아이들을 잃을 수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

문 쪽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박희수는 유리의 작은 입을 막고,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경계하며 유리를 데리고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쉿!”

박희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유리야, 엄마 말 들어. 오빠랑 같이 여기서 나가. 엄마한테 시간 좀 줘. 엄마가 꼭 스스로 방법 찾아서 너희랑 합류할게. 알았지?”

“엄마 걱정돼.”

박희수는 딸을 품에 안았다. “유리는 엄마를 믿어야 해.”

박희수는 딸을 안고 잠시 다독인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리를 먼저 내보내 시후를 찾아가게 했다.

유리는 착한 아이였다. 몹시 아쉽고 박희수가 걱정되었지만, 작은 다리를 움직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박희수는 유리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면서도 대견했다.

그리고 박희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에서 나왔다. 유리와 시후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박희수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걱정으로 답답했던 기분도 좋아졌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박희수는 두 보디가드를 보는 눈길마저 다정해졌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가시죠. 저를 다시 호위해 주세요.”

두 보디가드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

이 여자 괜찮은 건가? 들어갈 땐 칼이라도 들고 덤빌 기세더니, 화장실 한 번 다녀왔다고 기분이 좋아졌네?

여자 마음은 갈대라더니!

박희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때였다….

“얘야, 괜찮니?”

이 목소리는….

박희수는 온몸이 그대로 굳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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